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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시 : 2020-01-02 19: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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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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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헌 작성일20-02-20 16:00 조회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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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늦여름, 스탠퍼드 대학 조던 홀 지하에 작은 교도소가 들어섰다. 교도소에는 12명의 재소자가 수감됐고 12명의 교도관이 이들을 관리했다. 재소자와 교도관은 모두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재소자와 교도관의 성격 특질이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학대 행위를 예측하는지 알아보려는 역할극 실험의 참가자들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실험 첫째 날부터 재소자들은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키며 교도관에게 불복종하기 시작했다. 교도관들은 이들을 통제하고자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제재를 가했다. 이튿날 재소자와 교도관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고, 시간이 지나자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을 신체,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평범한 대학생이 역할에 점점 더 몰입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돼 갔다. 결국 학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연구 책임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2주간 진행할 예정인 실험을 6일 만에 종료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명명한 이 실험은 사회적 환경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인간 행동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순식간에 사회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연구가 됐으며, 필립 짐바르도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수많은 언론매체가 앞다투어 연구를 소개하며 우리 모두 상황과 환경 탓에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퍼뜨렸다.

 

그러나 최근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조작됐다는 충격적인 의혹이 나왔다.

 

참가자들의 이상행동은 모두 연기였거나 요구에 따른 것

 

작가이자 컴퓨터 공학 박사인 벤 블룸은 자신의 글 “어느 거짓말의 수명(The Lifespan of a Lie)”에서 당시 수감자 역할을 한 더글라스 코피와 인터뷰한 뒤 코피가 보인 이상 행동이 사실은 모두 연기였다고 폭로했다. 당시 코피는 교도관이 자행한 가혹 행위로 실험 3일째 만에 심각한 신경쇠약 증상을 보였다. 이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 가장 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으로 회자되며 수많은 언론매체, 청문회, 법정에서 인용됐다. 그러나 코피의 행동은 모두 연기였다.

 

조작된 것은 코피의 이상 행동만이 아니었다. 짐바르도 교수는 교도관이 재소자에게 가한 가혹 행위가 실험 참가자들이 주어진 역할과 환경에 몰입해 자발적으로 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도관이 벌인 가혹 행위 또한 짐바르도 교수와 연구진이 내린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짐바르도 교수의 실험 조교 데이빗 제프는 여리게 행동한 교도관을 더욱 고압적으로 행동하도록 교정했다. 또한 교도관 중에서도 특히 악랄했던 데이브 에셸만은 철저히 연기의 자세로 교도관 역할에 임했다고 밝혔으며(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를 공부했다), 실험 종료 후에 짐바르도 교수가 개인적으로 그의 적극성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실험 진행 과정에 있는 윤리적 문제도 심각했다. 당시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과 행한 인터뷰와 실험 녹취록에 따르면 코피를 포함해 재소자 역할을 한 학생 여럿이 실험을 중단하고 감옥에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짐바르도 교수는 요청을 묵살했으며, “오직 의료적 혹은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나갈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는 사실상 불법 감금으로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임과 동시에(연구 참가자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참여를 철회할 권리가 있다) 법적으로 처벌받을 만한 행동이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 대한 과학적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 대한 심리학계의 의혹과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험이 끝난 직후 짐바르도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심리학술지가 아닌 일반 언론 잡지인 뉴욕타임스매거진에 출판했다. 논문 출판에 필요한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학술논문은 심리학술지가 아닌 범죄학 및 형벌학 관련 학술지에 출판했다. 그 내용도 심리학적 검증보다는 미국 형벌시스템의 처참한 환경이 교도관과 재소자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메시지에 집중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반복 검증에도 실패했다. 영국 세인트 앤드류 대학의 스티븐 레이처와 엑서터 대학의 알렉산더 하슬람은 영국 방송사 BBC의 도움을 받아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부분적으로 재현했다. ‘BBC 감옥 실험’이라고 명명한 이 실험에서는 교도관 역할을 수행한 참가자가 역할에 몰입해 가혹 행위를 하는 것을 관찰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도관은 역할에 전혀 몰입하지 못하해 수감자에게 압도되기까지 했다. 이에 레이처와 하슬람은 인간은 환경 요인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인간 심리 연구의 어려움, 그리고 윤리의 문제

 

자연 현상과 달리 인간의 정신은 저울과 눈금으로 측정할 수 없다. 심리학자는 연구 참가자의 행동과 발언, 자기보고에 의존해 심리를 유추할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연구자의 주관이 섞여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기에 심리학자는 연구 설계와 결과 해석에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로 임해야 하며, 동료 학자들의 비평과 검증을 받아들여 균형과 정확성을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짐바르도 본인의 주관성이 개입했으며 그 메시지 또한 동료 학자들의 검증과 비판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그 메시지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미군 병사도,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나치도 사실은 모두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환경에 굴복한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면죄부를 주었다. 우리의 사악한 행동은 우리가 악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우리를 내몰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실험의 잘못된 결과가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됐을 때, 우리 사회와 시스템은 걷잡을 수 없이 퇴보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0년간 개인과 환경의 관계, 형법 제도, 인간 본성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쳐온 심리학자가 사실은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많은 이들을 씁쓸함을 느끼고 있다.

 

글: 백소정 서울대학교 인지과학 협동과정/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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